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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 15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08월 15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사도신경

찬송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502, 새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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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슥4:7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를 여러분 아시죠?

이 사람은 인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던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기회인가 보니

마가복음 10장 46절에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앉았다가 보니, 그 다음절에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기회다.’싶은 태도로 막 소리를 지릅니다. 

어느 정도 절박했는지, 성경에서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바디매오는 그럴수록,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라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놓치면 인생 끝장이다. 그런 각오로 매달렸습니다. 

 

바디매오는 정말로 마음의 소원을 얻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렇게 체면이고 뭐고 없이 매달리는 바디매오에 대한 반응이 두 갈레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시끄러워, 조용히해, 거지 주제에,’ 이와 같은 반응입니다. 

또 하나의 반응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바로 용납과 수용의 반응입니다. 

 

이런 반응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기인합니까?

예수님의 관점이 이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특별히 낙오된 사람, 실패한 사람, 연약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마음을 두셨습니다. 

반면 왜 주변 사람은 꾸짖었습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바디매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방해꾼정도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관점들을 마음에 염두에 두시고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시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누가 차지할 수 있다 말씀하십니까? 그러니까 영적으로 풍성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적극적으로 빼앗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이 관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관점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연약한 사람.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기는 사는데, 

이웃에 대한 긍휼한 시선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한 쪽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고침 받은 당사자를 포함해, 그것으로 고통 받았을 가족, 이웃들, 

얼마나 경사입니까?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지금 안식일에 뭐하는 것이냐며 분개를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딱딱한 종교인이 되었는지, 평생소원인 손 고침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황에,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오죽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했으면, 그 안식일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켰겠습니까?

그런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사건들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굉장히 종교적인데, 그 안에 예수님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우리도 그런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가질 수 있다 말씀하십니다. 

같은 무게로 영혼의 회복을 위해서는 ‘이 정도로는 안되겠다,’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씀들을 종종 하시죠?

‘오늘은 기도가 좀 잘 되네? 기도 빨이 좀 받네?’ 그러면 기도가 잘 되는 날 더 많이 기도하고, 

‘오늘은 기도가 잘 안 돼, 다음에 기도 잘 될 때 더 하지 뭐.’ 

이런 태도가 아니라요. 

더 적극적으로 영성이 살아 있건, 죽어 있건 상관없이 침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은혜는, 내가 잘한다고 가까워지고, 좀 못한다고 멀리가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회 주실 때 덥석 붙잡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영이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이 말씀. 

상징적으로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인생이라서 

이 큰 산이 없겠습니까?

 

수험생에게는 수능이 큰 산, 

취업준비생에게는 취업이 큰 산. 

결혼도, 직장도, 가정, 

국가적으로 전염병이 돌 때, 경제적인 위기가 왔을 때,

그것들을 향해 직시하며 선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산아 너 정도가 무엇이냐.’ 

‘하나님 사람인 내 앞에서 너는 무엇이냐.’ 

이 선포가 여러분 삶 가운데, 

여러분 예배 가운데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큰 산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첫 째로, 일반적인 장애물로서의 큰 산.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실제적인, 수능, 사업, 질병 등

여러분 바로 앞에 직면해 있는 큰 산입니다. 

 

두 번째로 직시해야 할 큰 산은 영적인 장애물로서의 큰 산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로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죄. 

이것이 큰 산입니다. 

우리 인생의 큰 목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 1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온 나라가 썩어 빠진 시대, 타락의 극을 보이던 시대였습니다. 

모두가 다 포기하고, 큰 산 앞에 좌절하고, 포기하던 그 때에 영안이 열리니까, 

그 땅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는 땅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었는데, 

생애에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하나님 영광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예배드리다가 가슴이 벅차오르고, 회개가 터져 나오고, 눈물이 쏟아지고, 그 하나님 영광에 압도되는 경험 말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을 때 한 강연에서 그 시대에 대하여 분석을 했는데, 

세 가지 문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세 가지 시기로 나뉜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분리의 시기

경계의 시기

재결합의 시기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같이 그 동안 우리가 친밀했던 것들과 분리가 되고, 

다시 언젠가는 똑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다시 재결합이 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다른 모습으로 이미 재결합의 시기를 살기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리와 재결합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경계의 시기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애매한 경계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도 이렇게 멈추지 않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데, 

있다가 없어질 그 무엇을 위해서도 이토록 전심을 다해서 침노하는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또 그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이런 것 정도에서 멈추어선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때마다, 예배가 없으면, 여러분 앉은 그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를 만들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큰 산들을 보면서, ‘네가 무엇이냐. 나는 하나님 자녀다.’ 

또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게 막는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죄 무엇이냐. 평지가 되라’ 선포하는 믿음의 삶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 선포가 실제가 되어 하나님 영광 속에 

날마다 산이 평지가 되는 기적 가운데 살아가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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