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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8월 28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사도신경

찬송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455,새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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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17-18

장자 외편 20편 ‘이상한 까치’라는 제목의 우화를 보면,

까치를 잡으려 활을 당기는 장자, 사마귀를 잡아먹으려 몰두하는 까치, 매미를 잡아먹으려는 사마귀, 이렇게 얽힌 그림의 짧은 이야기입니다.

우화의 교훈은 ‘견리망진’ 이익을 쫓다 본성을 잃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의 자화상 같습니다.

세상살이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진짜 중요한 것을 잃고, 보지 못하는 상황 아닐까요?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까치는 사마귀에, 사마귀는 매미에 몰두하느라 정말 현실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모습이 현대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을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첫째, 하나님 분노를 놓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땅에 있는 육체의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란과 더러운 짓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사게 됩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항목들이 열거되고 있는데, 현대인의 삶 중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눈 앞에 있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넓은 시야가 없고,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는 것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 말씀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진노하고 계십니까?

로마서 1장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경건하지 않음’ 과 ‘불의’가 하나님 진노의 원인이라 말씀합니다.

영어성경으로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음’이 경건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는 시대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AI가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자부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자체가 하나님 진노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는 경건하지 않음에 대한 결과입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낸 결과로써,

로마서 1장 28~29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경건하지 않음-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불의-’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거되는 항목들이 혼미한 시대로 이끄는 항목들입니다.

이 모든 혼미함에 대한 결과의 출발이 어디로부터 시작됐다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상태, 경건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말씀합니다.

 

둘째, 하나님 사랑을 놓치고 있습니다.

악한 세대를 초인적인 인내로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못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먹잇감만 보고 있는 까치처럼 눈앞에 놓인 현실에 문제에 몰두하다 하나님 사랑을 놓치고 있습니다.

끝이 없는 것처럼 인내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못 보고 있습니다.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실 이 땅에 모든 문제의 시작은 사랑의 결핍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참 역설적이게도 우리 아이들은 어떤 면에선 사랑 과잉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별나게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정작 아이들은 자신들은 사랑을 못 받고 있다 말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 편에서는 과도하게 사랑을 하고 있고, 또 한 편에서는 결핍이라 말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정말 참 사랑이신 하나님 사랑의 공급이 끊어졌기 때문 아닐까요?

다시 말해 여전히 사랑하시지만, 그 공급을 인간의 편에서 차단하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사랑하고 있다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을 설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15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 대한 ‘이처럼’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 이 말씀의 배경은 구약 민수기에 나옵니다.

광야를 지나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경건하지 않는 즉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립니다.

목숨 끊어져 가는 순간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 위해 대안을 백성들에게 주시는데,

민수기 21장 8~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이 사건과 비교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장대에 달린 놋뱀의 속성 때문입니다.

첫째는 놋뱀을 쳐다보라는 하나님 말씀에는 잃어버린 신뢰와 믿음을 회복해야 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놋뱀에 능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독이 올라 죽어가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쳐다본다는 행위로 낫는다는 것이 타당한 대안이 아닙니다.

요구사항이 수용하는 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요구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지키기 어렵습니다.

약초를 캐어 먹으라, 또는 상처를 절개하라 등과 같은 논리적인 요구였다면 하나님 신뢰 없이도 따를 수 있는 명령일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없이는 수용하기 힘든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물질도, 시간도 아닌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둘째 하나님 배려입니다. 온 몸에 독이 퍼져서 마비되는 상태에서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돌리는 것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 대안을 주신 것입니다.

신뢰만 있으면 가능한 일을 요구하십니다.

전적 하나님 은혜인 것이죠.

 

세 번째로, 두 사건이 갖는 공통점입니다. 두 사건 모두 이론이나 논리가 아닌,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독이 퍼져서 마비가 되고 죽는 상황에서 정말 믿기지 않는데, 쳐다보니 살아나는 것. 체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선고되었는데, 믿기만 하면 사는 것입니다. 역시 체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본문은 그러한 면에서 많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전하게’는 원어로 ‘받은 것을 전한다’와 ‘체험된 것으로 가르치다’라는 뜻입니다.

 

왜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요? 논리와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 직접 체험한 것.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는 것.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 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원어로는 ‘로고스’입니다. ‘진리, 말씀,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전하는 메시지’로 읽는 것이 좀 더 맞는 해석일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만큼 미련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그러니까 절망하고 낙심할 때, 어떤 은혜로 다시 서게 했는지 직접 체험한 자들에게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이 사건, 논리와 이성으로 풀어낼 수 없는 이 감격,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수용이 안되는 하나님 요구.

여러분 삶으로 증명하며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말이 앞서고 인간의 지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 체험되고, 전해진 감동과 감격으로 복음을 살아내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따르십시오. 그 길 위에 언제나 함께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보여지게 되는 감격적인 생을 살아가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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