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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8월 07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사도신경

찬송 - 거기 너 있었는가 (찬송136,새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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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호세아 1:2-11

호세아서를 읽다보면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범죄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1장 내내 하나님 분노가 쏟아집니다.

4절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6절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심지어 9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사람도 너무 격분을 하면 할 말 못 할 말을 쏟아부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1장에서 하나님 마음이 그런 것 같습니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은 호세아서 큰 주제 중 하나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치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을 담고 있는 것이 호세아서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화가나셔서 심지어 너희는 내 백성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는 하나님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묵상해보다보면,

분노가 있다는 것은 아직 애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체벌이 자연스러웠던 시절, 한 학급에서 어떤 한 학생의 잘못으로 반 전체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잘못은 한 학생이 했지만, 잘못을 방관하고, 또 잘못을 조장했던 온 학급 학생들의 심정이 체벌을 받으며 복잡했을 것입니다. 억울하기도하고, 수용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의 심한 말과 함께 체벌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울먹이며 말합니다.

‘저희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급 전체가 울음바다가 됩니다.

 

퍼붓는만큼 사랑의 무게가 비례합니다.

 

호세아 3장 1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가서 간음한 네 아내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는 건포도 빵을 즐겨도 나 여호와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네 아내를 사랑하라‘

분노하시지만 그만큼 큰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본문 하나님의 분노를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하시는 하나님 모습은 사실,

첫째, 포기하지 않으심입니다.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은 그만큼 애정이 있고, 포기가 안되기 때문에 싸웁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실망도 하지 않을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포기했기 때문에 기대도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 분노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왜인지 횡설수설하시는 것 같습니다.

9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무섭게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10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비슷한 구도가 2장에서도 이어집니다.

횡설수설하시는 것 같은데, 분노하시지만, 그 다음에 바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본심이 읽혀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의 분노를 잘 읽으시면 더함없는 은혜가 됩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딱 본문의 하나님 본심 아닐까요?

매 맞고 아픈 것에 끝나지 않고,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데에까지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기를 소원합니다.

버리셔서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가장 무서운 징벌은 징벌하지 않는 징벌입니다.

 

혹여 하나님 분노가 너무 아프고 힘드신 분이 계시다면,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임을 아는 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하나님 분노하심은 타협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분노는 적당히 혼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올바른 길을 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신다는 것은 인격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관점으로 우리에게 분노하시는 것은 인격체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바른길 가기를 원하시고, 적당히 타협하며 궤도에 놓는 것이 아닌,

스스로 깨닫고 바로 서기를 누구보다 원하시기에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타협하지 않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세 번째, 존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경우 거의 대부분 질투와 연관이 있습니다.

2장 16절~17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질투하심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며 왜 주시는지 설명하시는 대목을 보면,

출애굽기 20장 5절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사실 사람이 무엇인데,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먼지같은 존재인데,

사람을 향하여 질투를 느끼신다는 표현을 쓰십니다.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부가 아무리 많아도,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손주 앞에서 바보가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심지어 반려동물 앞에서조차도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과의 격차가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질투를 느끼지시고, 분노하신다는 것 자체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입니다. 관계 자체가 성립될 수 없고, 균형 자체가 무너져도 한참 무너진 상황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질투를 느끼신다 말씀하시고,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 아닙니까?

우리를 존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 분노에 대하여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승리입니다. 승리란 상대방에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반응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구사나기 류슌

 

마음이 있는 곳에 상처가 있습니다.

왜 상처를 받습니까? 상처를 주는 그곳에 마음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픈 것이 무엇입니까?

반응해야 할 하나님 분노에는 무감각하고, 반응 안해도 될 세상일에 온통 마음을 머물게 해, 잠을 못자고, 아파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분노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적 민감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우리는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했다면,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분노하시는 하나님 본심이 2장 2절에 나옵니다.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하나님 분노하심의 목표가 이것입니다.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돌이키면 용서하시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시겠다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부끄러울 수 있지만,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거되면, 그 자리에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로 채워집니다.

하나님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

모든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는 합정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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