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30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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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찬송82,새95)

성경본문 로마서 5:1-4
‘세상이 복잡한가. 내 머릿속이 복잡한가’
김홍신 <인생 사용설명서> 책에 나온 문구입니다.
사실은 진짜 복잡한 세상살이 보다는 마음이 분주하고, 필요이상으로 많은 생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사실 세상이 복잡하다 하지만, 복잡하지 않았던 삶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신문기사만 보아도 늘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평온해지기 위해 세상이 복잡해지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생각을 잘 정리하면 복잡하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몸에 가시로 표현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안질, 간질 여러 병으로 추정을 하지만 성경에는 그 병이 무슨 병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바울이 참으로 고통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문제로 간절히 간구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들어주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고후 12장 9절
‘나에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무슨 의미입니까? 응답을 받아 고침 받으면 주를 찬양하고 응답받지 못하면 할 수 없이 참아내는 것이 아니고, 생각 자체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울을 괴롭히고 고통하게 하는 가시야말로,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 의도를 깨닫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고후12장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고침을 받은 응답을 받은 상황입니까? 응답받고 행복해서 간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가시는 뽑히지 않고,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면의 생각이 바뀌어지니, 그 가시를 오히려 기뻐하는 것입니다.
12장 9절에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여러분 그러니까 내 인생이 크게 기뻐하게 되기 위하여,
환경을 바꿔 달라는 기도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달라지면, 어려운 현실에서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겉으로 드러나는 육신의 가시를 뽑아야되는 대상으로 여겼지만,
사실은 마음에 있는 가시를 뽑아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치명적인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이것 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다고 여기는 그 무엇. 가시로 여기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가시로 바라보는 내면이 진짜 걸림돌입니다.
여러분 진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입니까? 이 정도도 용납못하는 내 내면 때문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사실 말이 안되는 말 아닙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이 떠나야 즐거워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강조하는 것.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 복잡한 것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다스리는 것. 외부로부터 부어지는 힘으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제거해야 하는 가시가 내 내면에 있는데,
그 불행을 외부에서 찾고, 전가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진짜 가시를 보는 눈을 주시고, 참 된 인생의 안내자 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지도를 받을 때, 마음의 가시가 제거되면, 상황이, 환경이 문제가 아닌 자 되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 5장 1절의 말씀은 로마서 4장까지의 말씀을 함축한, 신학적 용어로는 ‘이신칭의’라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1절과 2절에서 칭의가 가져다주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관계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특권,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자 되는 특권이 칭의로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앞 두 가지는 현재적 특권이라면, 세 번째는 미래적 소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현재를 누리고 잘 사는 것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현실을 뛰어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기대하는 것, 힘이라는 것입니다.
‘장차 도래할 영광’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구원의 완성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하나님 영광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소망’은 신앙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는 것들이 소망입니다. 실상은 소망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러니까 풀어서 읽어보면, ‘믿음은 내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너무 현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환경을 바꾸어 주시길, 병이 낫기를, 조금 더 잘 살기를, 세상 기준에 남부럽지 않은 환경을 구하는 것이 우리 신앙은 아니었을까요?
로마서 8장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하루라도 빨리 주님을 알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큼 큰 복이 없습니다.
현재에 함께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오늘의 큰 복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님을 머지않아 장차 도래할 미래에 대면하며 즐거워하고 함께하게 된다는 것.
이 소망이 믿는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복입니다.
그렇게 소망하며 함께 오늘도 지어져가는 합정교회와 여러분 삶이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